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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메니데스 편을 옮겨 쓴 후에

       (1998년 작성, 2003웹문서로 옮김)

 

휴....................................................

겨우 옮겨 썼다.  버닛 판 본 40 쪽 20 장에 불과한 내용이었지만, 얼굴 껍닥이 벗겨져 수 십년 늙어 버린 것 같다. 역시 미네르바의 올배미는 황혼 녁에 날아야 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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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세 요약

 

지난[1998] 1월 14일 주문도에 책 풀어 놓고 형이상학을 옮겨 쓴 후, 파르메니데스 옮겨 쓴지 한 달 정도 흘러간다. 어쩐지 형이상학이 한 수 아래인 것으로 여겨진다. 형이상학을 번역하고 나서는 부쩍 자란 듯이 보였다. 모름지기 철학은 이래야 한다는 자부심도 생겨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형이상학이 괜히 무거워 보인다. 날카롭다고 여겨지던 논리도 무뎌 보이며 알멩이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는 별로 필요없다고 까지 생각된다. 파르메니데스 편을 풀어 설명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진정 그러하지는 않으리라. 많이 다르리라. 그러나 여기서는 비교분석하지 않으련다. 비교 분석 해, 두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새롭게 우리가 있어야 할 길을 모색 해 보는 것이 내 논문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든가. 그져 단지 파르메니데스를 한 번 옮겨 쓴 후, 떠 오르는 것만을 간단히 적어 보련다.

한 마디로, 붕 떠있다. 잡일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 엄청 많이 안 것 같다가도, 하나도 모를 것 같다. 아스라한 경계를 들락날락 한 것 같다. 시시하게 말하자면,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이 때론 보이게, 때론 안 보이게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 같다. 허무하기까지 하다. 무언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너무 논리적이다. 하나 하나 쪼개진다. 큰 것이 작은 것으로 차례로 나뉘면서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 온다. 여러 길들이 차례로 겹치면서 하나 씩 풀려나간다. 혼돈이 없다. 막무가내가 아니다. 피 없는 살로 꼼꼼하게 숨결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단숨에 써 내려 간 듯 하다. 치밀하다. 고요하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한다.

 

말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인식되지도 알려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무엇일까? 하나(헨) 그 자체, 다시 말해 에이도스 또는 이데아 그 자체다. '만약 하나가 있다면'에 속하는 '하나'이다. '만약......이면'(에이)이 '하나'와 '있다'에 모두 걸리는 경우의 하나이다. 그러나 심지어 이 하나는 '있음' 마져 아니다.

그럼, 하나는 있지 않는 것일까? 있지 않으므로, 그 하나에 대해 우리는 입도 벙긋 못 할까?  '플라톤'에 따르면, 있는 것만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말해질 수 있는 하나가 있다. 바로 그 하나가 '있는 하나'(토 헨 온)이다.  실체를 지니므로, 비로소 있게되는 이 하나에 관해 우리는 말 할 뿐이지, '만약 하나가 있다면'의 '하나'에 관해서는 우리 입도 벙긋 할 수 없다.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려 전개하고 있는 이데아 론의 극치가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있는 이 하나'는 '하나가 만약 있다면'(헨 에이 에스틴, 142b6)에 속하는 하나이다. 여기서는 '만약.....이면'이 '하나'에 걸리지 않고, '있다'에만 걸린다. 하나가 만약 있다면, 하나와 다른 (알론한) 것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말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말해진다.

이어, 하나가 만약 있지 않다면, 있지 않는 이 하나와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무슨 의견이 주어질 수 있을까. 이제 그는 '있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다. 있지 않는 것은 있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있지 않는 것은 있는 것과 다를(헤테론 할)뿐이다. 그는 '있지 않는 것을 다른(알론) 것들 가운데 차이(헤테론)난 것이라 말한다(160c5-6). 우리 흔히 말하곤 하는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가 만약 있지 않다면, 다른 것들은 어떻게되는가? 플라톤은 이 물음에 답하면서, 다음 말로 파르메니데스 편을 마친

 

"그래서 우리들이 말했던 것을 간결하게 말하자면, 하나가 만약 있지 않다면, 어떤 것도 있지 않다고 우리는 말하네. 올바르게 말 한거지?

 

가장 올바릅니다.

 

여기에 우리는 다음을 덧 붙힐 수 있을 것이네. 하나가 있든 있지 않든, 하나와 다른 것들은 모든 길에서 모든 방식으로 자기 자신들과 그리고 서로에 관계 맺으면서 맺지 않으며 그리고 나타나면서 나타나지 않는다네(......, auvto. te kai. ta=lla kai. pro.j au`ta. kai. pro.j a;llhla pa,nta pavntws evsti, te kai. ouvk e;sti kai. faivnetai te kai. ouv fai,netai)

166c3-5)

가장 진실하십니다(166b7-166c5)"

 

하나가 하나 자기 자신과 다른 것들에 대해 무엇으로 있으며 있지 않는가? 그리고 다른 것들이 자기자신들과 하나에 대해 무엇(티( ti,)으로 있는가? 다시 말해, 하나 또는 에이도스가 자기 이외의 다른 것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으로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는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파르메니데스 편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을진데, 이 대화편은 에이도스 또는 이데아 론이다.

 

 

젊은(127c5) 소크라테스가 65 세 쯔음 나이 든 파르메니데스와 40 세의 장년 제논 앞에서 에이도스 론을 펼치면서 그 대화 편은 열려진다. 그러나 아직은 젊은 그가 전개 해 나가는 이데아 또는 에이도스 론은 회색 노년 신사 파르메니데스가 보기에는 미쳐 다듬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특히 에이도스를 다른 것들이 취하는(메타람바네이, 131a5) 길들에 관해 말하는 것은 제우스도 감당하기 어렵다 라고 고백하도록 노회한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끌고 나간 후에, 변증법 훈련(136c5)을 통해 아직은 젊은 그러나 지혜 사랑하는 자들을 다듬음과 동시에 에이도스 론을 더 높은 경지에서 전개한다.

젊은 소크라테스가 있는 힘 껏, 비록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에이도스 론을 펼친 후 내린, 나누어 지님에 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 파르메니데스여! 제가 할 수 있는 한,  제시 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 에이도스들은 고정된 원형들처럼 자연 안에 있으며, 다른 것들은 이 원형들을 닮아 있거나 그 원형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이 에이도스들을 나누어 지님은 에이도스를 닮아감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132c12-d4)"

 

이러한 자신의 결론을 내리기 전에, 소크라테스는 다른 것들이 에이도스를 나누어 지닐 길에 관해, 어디까지나 잠정적이고 비유적이기는 해도, 말하기는 한다. 여럿 각자 안에 있어야 하는 '있는 하나'(헨 온, 131a9)로서의 에이도스는 분리된 많은 것들 안에 동시에 자기자신과 분리되어 전체로서 있을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자기자신과 분리되지 않게 있어야 한다면, 동일한 날(日, 에애메라)처럼 자신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여러 곳에 동시에 전체로서 있을 것이다. 만약 전체로서 있지 않을 거라면, 배 탄 사람들에게로 돛이 펼쳐질 경우 각자에게 그 돛의 부분이 씌워지는 것처럼 여러 곳에 동시에 부분으로서 있을 것이다(131a1-c5).

그러나 돛이나 날(day)로 비유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혼(132b5)안에만 주어지는 노에애마(정신적인 것, 132b4)도 아닌 것으로서의 에이도스는 진짜 있을까? 있다! 그럼 어디에 있을까? 또 있다면 무엇에게 알려질까? 영혼이다.

 

영혼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생물이 무엇을 기억한다면, 그 기억은 생물 어디에서 일어 날까? 영혼에서 그 기억은 일어나지 않을까? 자신의 대화 편 파르메니데스의 내용을 플라톤은 누군가 더러 상기해 내도록 한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설령 30인의 참주 중의 하나라고 하더래도, 그의 제자와 이름을 같게 한 것은 기막힌 문학적 기법이다. 그 제자는 이데아 론을 끝장 내려는 것처럼 (후에) 뤼케이온에서 강의하지 않는가!)가 제논과 파르메니데스와 더불어 행한 대화를 안티폰으로 하여금 상기 해 내도록 하는 가운데, 소크라테스와 파르메니데스 입을 빌려 플라톤 자신의 에이도스 론을 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티폰이 그 대화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다. 오랜 친구이면서 제논의 친구이기도 한 퓌토도로오스(127a8)가 자신에게 말해 준 것을 기억했다가, 안티폰이 상기 해 낸다. 따라서 안티폰도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얽히고 섥혀 희안하게 상기된 대화를 기록하는 사람을 클라쪼메나이에서 아테네로 안티폰을 찾아 온 케팔로스이다. 그러므로 케팔로스도 자신이 직접 참여한 대화를 적은 것이 아니라, 거치고 거쳐 시간이 흐른 뒤, 간접적으로 들은 대화를 적은 셈이다. 희안한 복선(그래서 더욱 더 문학적인가 보다)이다.

이 대화 편은 나이가 지긋이 들어 생각이 원숙해 졌을 때 플라톤(기원전 428/7-348/7)이 쓴 것이므로, 아마 지금(1997, 2003)부터 약 2300년 전 대화를 내가 2300 여 년 지난 지금 보고 있는 셈이다. 토론과 논증의 성격을 띤 대화는 2300 여 년 전 아테네 남부 축제 기간 어느 한 시점 케라마쿠스 성벽 밖에서 드디어 벌어졌다. 소크라테스를 비롯 지혜를 사랑하는 아테네 젊은 이들 몇몇이 멀리서 제논과 파르메니데스이 와서, 제논이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왔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끼어있었다.

 

 

이 대화는 1)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에이도스 론을 전개하는 부분(126a1-137c3)과 2)파르메니데스가 그 에이도스 론을 보완하는 부분 등 크게 두 부분(137c4-166c5)으로 나뉜다.

다시, 1-1)에이도스 론이 시작되기까지 일련의 상황이 기술되는 부분(126a1-127d6)과 1-2)여럿은 있지 않다 라는 제논의 첫 전제(휘포테신)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에이도스 론이 전개되는 부분(127d6-137c3) 등 두 갈래로 그 첫 부분은 나뉘며, 역시 두 번째 부분도 2-1)'하나가 있다면 하나와 다른 것들이 각 각 자기 자신들과 서로에 대해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37c4-160b4)과 2-2)'하나가 있지 않다면 하나와 다른 것들이 각 각 자기 자신들과 서로에 대해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60b5-166c5) 등 두 가지로 나뉜다.

'2-1)'은 다시, 2-1-1)'만약 하나가 있다면 하나는 자기 자신들과 다른 것들에 대해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37c4-142a8)과 2-1-2)'하나가 만약 있다면 하나와 다른 것들이 각 각 자기 자신들과 서로에 대해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42b1-160b4)등 두 갈래로 나뉘며, '2-2)'도 다시 2-2-1)'하나가 만약 있지 않다면 하나와 다른 것들이 각 각 자기 자신들과 서로에 대해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60b5-160d2)과 2-2-2)'만약 하나가 있지 않다면, 하나와 다른 것들이 각 각 자기 자신들과 서로에 대해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60d3-166c5) 등 두 갈래로 나뉜다.

'2-1-2)'는 다시 2-1-2-1)'하나가 만약 있다면, 하나는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42b1-157b5)과 2-1-2-2)'하나가 만약 있다면 다른 것들은 어떻게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57b6-160b4)으로 나뉘며, '2-2-1)'도 다시 2-2-1-1)'하나가 만약 있지 않다면 하나는 어떻게 나타나는(독사제인하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164b5-165e1, 165e2-166c5)으로 나뉜다. 이렇게 나뉜 부분들을 모아 보면 모두 8 가지이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 대화 편은 젊은 소크라테스가 에이도스 론을 펼치기 전까지의 과정과 소크라테스의 에이도스 론과 파르메니데스의 에이도스 론 6 부분 등 모두 8 부분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이 부분들 가운데 파르메니데스가 펼치는 에이도스 론을 좀 더 논리적으로 아래 도표처럼 구분 해 보자. 실로 그 대화 편은 파르메니데스의 에이도스 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도 생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표는  파르메니데스 편에서 ei=nai$에이나이, 있음( 존재)와 to. o;n$토 온, 있는 것, 존재)와 ouvsi,a$우시아, 실체, 존재)과 fa,ntasia$판타지아, 심상)이 어떠한 영역 안에서 구분되어 쓰였는 지를 잘 드러 낸다(위 인용 글월을 다시 살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