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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2010.02.27 06:09
출발점--기독교와 맑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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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와 기독교 | |
목차 | |
I. 서론 1. Marx 주의와 기독교의 출발점 2. Marx 주의의 종교관과 기독교의 본질 | II. 철학의 기초 1. 진리관 2. 역사관 3. 변증법 |
III. 실천적 방법 1. 혁명 | IV. 결론 1. 실천적 목표-자유(인간해방) |
I-1. Marx 主義와 基督敎의 出發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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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그의 저서 形而上學에서 아르케(ἀρχή, Arche)를 7 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는데(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012a14. 제5권 1장), 그 첫 의미로 “그 곳으로부터 사물의 운동이 시작된 부분”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르케의 이런 의미로만 한정 짓는다면 시원(始原)의 의미로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Marx주의과 기독교는 그 출발점이 다르다. 즉 전자는 과학의 결과물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반면 기독교는 성경을 신뢰하는 믿음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과학은 인간의 소산인 반면 성경은 인간의 소산이 아니다. 이와같이 상이한 배경을 근거로 두 思想(사상)은 출발하기 때문에 출발점과 귀환점이 다르다. 맑스주의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해서 인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 구심점이 인간인 반면 기독교는 하나님(하느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인간을 거쳐 다시 하나님(하느님)으로 돌아간다.
맑스주의에 의하면, 유일한 실체는 현상계 안에 있으며, 현상계 이외의 다른 실체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실체는 물질이며 그 물질은 변증법적인 운동을 한다. 결국 현상이 곧 본질이며, '활동이 곧 실체이고'(マルクス 主義と基督敎. 矢內原忠 야나이하라. 33쪽. 1933년), 이 실체는 감각되어질 수 있는 현상계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감각을 떠난 실체란 있을 수 없다. 과학은 이러한 현상계에 관한 인식의 결과로부터 성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는 과학으로부터 설명되어질 수 있다. 비록 현실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과학 즉 지식은 무한히 진보해서 결국 모든 존재에 관한 것이 과학으로부터 설명된다. 이와같이 맑스주의는 유물론적 인식론을 근거로 해서 과학을 출발점으로 한다. 맑스주의는 현상을 관찰해서 파악한 법칙을 그 내용으로 한 과학적 방법, 과학적 인식, 과학적 정신에 입각한 세계관을 형성하며 과학적 방법으로는 유물 변증법을, 그 역사철학으로는 유물사관을, 그 실천상의 정책으로서는 계급투쟁을 갖는 광범위한 사상체계를 갖는다.
보이는 것을 아는 것이 맑스주의 정신인데 반해서 기독교 정신은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맑스주의가 환상이라고 해서 제거해 버린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고 역사를 선의지(善意志)대로 이끌어간다고 믿으며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앙의 중심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예수님]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 모든 일에도 이 사람[예수님]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개역)성경 사도행전 13장 38~39절) 라는 성구와 같이 영혼의 구원에 있다. 이와같이 기독교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보이는 것이 나온다는 믿음을 그 시원으로 삼는다. 이어 이 믿음을 근거로 해서 모든 지식을 성립시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개역)성경 잠언 1장 7절).
그리고 기독교는 인간을 포함하는 현상을 통해서 유일한 실체로 드러나는 신(神)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신 즉 하나님은 현상과 본질적으로 동질의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서는 현상 속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 속에 본질과 다른, 본질의 성품으로 나타난 현상이 있다. 그리고 현상을 경험함으로 해서 얻어지는 과학은 하나님 즉 진리를 설명해 나가고 있다고 보나,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불완전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맑스주의와의 문제점을 가시적으로 어떻게 드러낼까? 그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맑쓰주의가 출현하기 전부터 과학과 신앙 즉 이성과 신앙은 충돌해 왔었기 때문이다. 중세철학의 근본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이성이 우위인가? 신앙이 우위인가? 또 근세의 생물학에서 볼 수 있었던 진화와 창조의 문제 등이 그 실례이다. 그러면 왜 그와같은 충돌이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것은 맑스주의가 진화설 즉, 생물계에만 한정되었던 진화설을 사회의 영역에 끌어 들여 그것을 적용했기 때문이며, 류적 존재인 인간의 이성을 그들은 절대적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후속 글 이어 갈 예정입니다)
관련 문서: 야나이하라 타다오, 맑스주의와 기독교 서문, 맑스주의와 기독교의 출발점, 이데올로기로서의 이슬람과 공산주의,
참고문헌: 1) 일본기독교의 발자취 ( 김수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서울. 한국. 2003.)
2) マルクス 主義と基督敎 ( 矢內原忠, 一粒社, 名古室市. 일본. 1933.)
3) 2002 한국기독교회사 (박용규,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 한국. 2002.)
4) 사이트: http://www.asahi-net.or.jp/~hw8m-mrkm/kate/00/yanaihara.lif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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